한국인, 체면 그리고 부동산

어느 나라나 체면이나 있는 척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됩니다만 외국생활을 하면서 한국을 보면 유독 이 체면이나 있는 척하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실제로 있는 척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와대 직원을 사칭하거나 bmw 열쇠를 가지고 부자인척하거나 명문대 학생인척 하면서 사기를 치는 사람의 이야기도 참 많이 들리는 것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만 한국사람이 얼마나 체면에 신경을 쓰는가를 알수 있는 증거는 우리의 언어습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호칭은 사람을 매우 자세하게 구분하며 우리는 호칭에 목숨을 겁니다. 박사가 있으면 꼭 박사님이라고 부르고 조기축구회 회장을 했던 경력이나 구멍가게 주인을 했던 경력이라도 들먹여 서로 회장이니 사장이니 불러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 호칭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한국사람을 만나면 참 곤란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칭어를 쓰냐 안쓰냐 하는 기본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호징을 선택해야 할것인가 가지고 골머리를 썩혀야 하는 일이 많으며 대개 상대의 직함을 가지고 교수님이니 실장님이니 하고 부릅니다만 그런 식이 되면 결국 뭐하시는 분입니까로 시작하여 상대방의 인생과 직업을 탐색하고 최대한 올려드릴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이건 차별의 시작입니다. 예를 들어 몇사람이 모여있는데 한사람만 박사가 아니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굳이 서로를 강박사 조박사 이렇게 부르고 있으면 그건 결국 박사없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되고 맙니다. 다들 직급이 좀 된다고 해서 서로 회장님 부장님 박변호사 이런 식으로 부르면 거기에 농사짓는 분이 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없는 말을 만들어 내지 않는한 김농부 이렇게 부르기도 뭐하고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언어습관은 매우 차별적입니다. 우리는 있는 척하고 높은 척해서 거기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생각없는 사람들은 곤란해 하지도 않습니다. 강남살아요 하면 와 하고 신월동산다고 하면 아 그러세요라고 시시하다는 듯 단순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단순한 판단과 차별의 생활화랄까요. 그것이 많은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최근에 인상적인 대화를 언급한 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일입니다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 한 지인이 강남의 비싼 아파트에 살기에 그 아파트를 팔고 싼데로 이사간 후 그 시세차익을 은행에 넣으면 어떻겠냐는 말을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는 이자가 높아서 거의 그 사람의 월급수준으로 이자소득을 올릴 수 있던 때였습니다. 그때 그말을 들은 그 강남사는 사람은 강남의 아파트는 단지 주거나 편의로 논의될 것이 아니라 체면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금액으로 보았을때 거의 자신의 월급수준의 돈을 단지 체면을 살리기 위해 지출하면서 살고 있으며 그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을 나누는 선을 긋고, 직급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선을 그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부동산의 경우는 그것이 그 부동산의 가치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인 것같습니다. 나 강남에 살아라는 말을 하기 위해 적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터무니 없는 정도의 비용을 기꺼이 부담할수 있는것이 한국인인 것입니다. 체면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잣대중의 하나가 집이었습니다. 어휴 대기업 부장이라면서, 이사라면서, 부사장급이라면서, 이런델 살아 같은 말을 들으면 비싼 집에 사는 것의 잠재적 비용과 위험을 알아도 빚을 내서라도 비싼 집으로 이사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러고 나서 자기합리화를 열심히 하는 거지요. 옷이나 자동차나 비싼 사교육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젊은 층이 그렇습니다. 지금의 노년층은 집에 대한 집착이 훨씬 강했습니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청년을 보면 건실한 청년이라고 칭찬하곤 합니다. 요즘 젊은 층은 비싸진 집을 살 돈도 없고 어쩌면 그래서 일지 모릅니다만 현명해 진 면이 있습니다. 집에 대한 집착이나 과시에서 벗어나면 인생의 짐이 크게 덜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멋이나 체면이란 주관적인 것이며 문화의 문제이며 철학의 문제입니다. 산자락에서 막걸리에 과자안주를 먹는다는 객관적 사실은 어떤 사람에게는 비참하고 챙피한 일일수 있으며 그 사람은 번화가의 화려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 위해 기꺼이 몇백배의 돈을 낼 용의가 있으며 그렇게 한번 기분내고 그 비용을 대느라 바쁘게 살아갈 용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연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내가 진짜 멋을 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변명인지 신포도인지 그런 것은 사실 2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멋이나 체면에 대한 주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생각을 좀 바꿨는데 생활비용이 엄청나게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평생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그렇게 번돈으로 가족은 강남의 아파트에 살고 자식은 비싼 학원에 다니게 하는 생활보다는 여유시간을 가지고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즐기고 자신의 취미를 즐기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느낍니다. 강남 아파트 거지와 옥탑방 부자는 소비패턴의 차이입니다. 아파트에 목을 매서 결국 죽을때까지 수억에서 수십억을 깔고 살면서 남 좋은일이나 시킬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호사스러운 것도 아닌 껍데기를 얻고자 쉴새없이 경쟁하고 일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부동산은 그 성질상 재빨리 바뀔 수는 없지만 이미 매체를 통해 들어나는 부자의 주거는 바뀐지 오래입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우리는 어느 새 고급빌라나 단독주택에 사는 부자들의 모습에 익숙해져 갑니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저층 빌라나 단독에 살았습니다만 그때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 부자생활의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거꾸로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체면’의 차원에서도 아파트는 이제 더이상 나 아파트 산다고 자랑할 단계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때 부유층의 스포츠로 알려진 테니스가 골프에 자리를 넘겨주고 이젠 그 골프마저 대중화 되고 만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과하나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해묵은 논쟁을 상기시켜줍니다.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노동의 가치가 사과의 가치인가 아니면 시장에서 희소가치를 따져서 정해지는 것이 사과의 가치인가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물론 가치에 대한 견해란 단순히 그런 두세개의 견해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체면에 관련된 가치가 많은 것들위에 엄청난 거품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가치평가에 대한 기준과 자신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위니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니 요즘 부자들은 다 이걸한다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에 쉽게 흔들립니다. 그런 거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합니다.

제가 보기엔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 주거로 정상에 오른 지금, 이제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더 짓기도 힘들 만큼 많은 아파트가 지어진 상태인 지금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아파트건 집이건 물건은 그대로 이지만 분위기가 바뀌고 나면 그것들은 마치 유행지난 넥타이나 자켓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자기 판단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 따라 살아온 사람에게는 말입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넥타이나 자켓보다 집이 훨씬 비싼 것이라 유행이 지났으니 유감스럽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라는 겁니다. 아이폰 유행한다고 장기매매해서 아이폰을 샀는데 사고 보니 그나마 유행도 지나서 별 쓸모도 없더라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체면중시와 자기가 없는 것 그래서 유행에 잘따라가는 것이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것이 부동산을 통해서도 들어나게 되지 않나하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많은 한국인들은 벗어던져야할 껍데기가 너무 많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있는 척하려고 평생을 잡혀사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수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그렇게 취직하고 그렇게 결혼하고 그렇게 집을 사고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그렇게 늙어가느라 결국 건강을 해치고 뭐하나 진짜로 좋은 일은 없고 평생 바쁘기만 한 것입니다. 껍데기는 벗어야지요. 그것은 멋진 껍데기나 우리를 보호해 주는 껍데기가 아니라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껍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