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위해 영혼을 팔겠다는 “보편적복지”

2010년 유럽은 한 국가의 복지라는 문제가 세계 경제에 얼마만큼 심각한 위협이 되는지를 실증했던 한해였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포르투갈의 국가재정위기가 확대 되면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국가경제 체급이 톱클래스인 국가까지도 위기론이 확산되며 세계 경제는 충격에 빠지게 했었다. 행여 불똥이 튈까 유럽 제 국가들이 전전긍긍하며 각국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각출하며 불길 진화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미봉책에 그치고 말았다. 여전히 유럽 발 재정위기는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이다.
그리스 재정위기에 뒤이어 터진 프랑스 연금개혁법 반대 시위는 지구촌을 달구며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 되었었다.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시위는 은퇴한 노령 층에서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법시위에 참여하면서 무정부상태를 이끌었었다. 심지어 수업을 파하고 고등학생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거친 구호를 외치며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등 무질서와 파괴가 상존하는 불법 시위에 동참 했었다.
프랑스의 경우 2009년 연금지출액이 GDP의 약 12%를 이르고, 한해 연금 적자만 50조원에 이른다. 적자규모가 프랑스 GDP의 8%에 이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하여 연금지출이 GDP의 15%에 이르고 있다.
현행의 연금제도를 운영한다면 프랑스는 몇 년가지 않아 국가경제가 파탄 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였고, 개혁을 미루면 연금재원 마련을 위하여 국민을 쥐어짜며 백골징포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결국 국민 주머니를 턴 연금은 백골징포가 되고 프랑스 국민은 장님 지 닭 잡아 먹는 꼴이 되어 버린다. 누가 보더라도 프랑스 연금개혁은 당연하다. 그 당연한 것을 하고자 하는데 극단으로 치달은 국민의 저항으로 주유소에 기름까지 떨어질 정도로 무정부 상태가 지속 되었었다. 또한 연금 수급권자인 노령 층과 일을 해서 세금을 내야 하는 젊은 층의 세대 간의 갈등까지 비화 되면서 국론분열의 시한폭탄까지 안아야만 했다.
복지정책은 한번 시행 된 후에는 철회가 불가능해 진다. 또한 복지혜택을 줄이는 것은 무정부 상태를 각오하거나 무력을 동원한 혁명을 다짐할 용기 없이는 수술이 불가능한 괴물로 변하게 된다.
1995년 프랑스 알랭 쥐페 총리는 철도·운송 등 공공부문 연금 개혁을 추진했으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고 97년 총선에서 참패 했었다. 연금문제에 있어 유럽의 가장 골칫거리인 이탈리아는 EU에서 조차 통화권 복귀의 전제 조건을 연금개혁으로 내걸 정도로 문제아였다. EU 통화권 편입을 위하여 94년 연금법 개정을 시도하던 베를루스코니는 수상 직에서 쫓겨나야 했다.
복지문제에 관한 한 국민적 표심을 거부하고 거대한 국민적 저항을 감수하며 개혁에 착수할 용기 있는 정치인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만 준다면 영혼도 팔을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입 발린 소리에는 책임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선진복지국가는 수십 년 전 성장완료 단계에 고령사회를 맞이하고 최소한 국민소득이 30,000불에 이르러야 고령사회를 견딜 수 있다. 지난해 연금문제로 심각한 홍역을 치룬 프랑스의 경우도 156년에 걸쳐 고령화 사회가 진행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단 26년만에 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백년이상 국부를 쌓아온 선진국조차 복지재정의 고갈로 국가경제가 무너질 정도인데 일천한 국부축척이 전부인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에 관한 접근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지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국민에게 국가에서 무상으로 지급하며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모든 복지는 국민의 주머니로부터 돈이 나와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보다 더한 축복이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는 복지정책보다 선행되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다.
뭐든 무상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늙고 얼마 살지 않을 사람들이다. 또한 외친 복지구호에 대하여 책임질 일도 없는 사람들이다. 입 발린 소리로 국민의 표만 구걸하면 끝인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은 국민의 혈세로 연명하는 정치인들이다. 과연 그들이 프랑스와 같은 국가적 혼란이 닥칠 때 시위군중 앞에서 용감하게 순사 할 사람들인지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세대이전 방식으로 추진되고 당대는 자식들과 후손들의 주머니를 털어 먹고 살며 손 벌려야 한다. 불과 일 이십년이 지난 후 가난에 신음하는 후손들을 저주를 받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복지는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경쟁에서 탈락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위하여 적절한 복지정책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또한 양육강식, 무한 경쟁이 미덕인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한정 된 국가자원으로 복지가 불필요한 부자들에게 까지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심각한 국가적 낭비이며 정의롭지 못한 처사이다. 마땅히 복지혜택을 누려야 할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선택적 복지는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당연한 귀결이다. 더욱이 우리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양극화 국가가 되었다. 부자들은 충분이 납세하고 먹고 살만 하지만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산삼 갈아 먹는 부자에게 도라지 몇 뿌리 손에 쥐어 준 들 이내 버려지고 말 것이다. 그러한 국력낭비를 정의인양 부르짖는 머리 텅 빈 정치인들 그들은 오로지 표만 구걸하면 되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표를 얻기 위한 간교한 정치인의 입 발린 소리가 연일 우리 귓전을 때리지만 과연 그들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