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샐러리맨 – 제1장 (1)

** 어제 “어느 샐러리맨의 점심 풍경”이라는 글을 올리고, 고민을 좀 했네요. 이것을 소설의 서장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했더랬죠. 그렇다면 당연히 기업소설이 되어야 하는데, 단순한 기업소설만으로는 뭔가 양에 차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기업소설에 무협적인 요소를 가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네요.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하는 고민처럼. 그래서 나온 게 ‘짬짜면’이듯이 기업소설과 무협소설을 적당히 섞으면 재미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네요. 의도치 않게 ‘샐러리맨’이라는 제목의 넌픽션과 픽션이 결합된 짬짜면 스타일의 소설로 이번 여름을 넘겨볼까 하네요.


 


第一章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송도(松島)는 전설이며 또한 신화를 만들어 가는 기회의 땅이다. 


1937년 일제시대에 수인선(水仁線) 기차가 개통될 때, 일본인들이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역을 세우면서 송도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단지 일본인들의 눈에 ‘소나무가 우거진 섬’처럼 보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쨌든, 이곳 송도는 대한민국 바이오업계의 꿈이고 미래 먹거리이다. 


그런데 송도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바이오기업은 서정바이오였다. 


무명의 샐러리맨이었던 ‘서정’이 미국 바이오기업 제넨텍의 자회시인 백스젠과 한국의 KT&G로부터 2000년 초반 투자를 이끌어내 시업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백스젠으로부터는 에이즈백신생산에 필요한 동물세포배양기술과 대규모 배양생산시설설계기술을 이전 받았기로 했다. 


백스젠 기술을 바탕으로 공장을 건설했던 서정바이오, 그러나 2004년부터 생산하기로 했던 에이즈 백신이 미국의 임상 시험에 실패하면서 시업이 크게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에이즈백신 임상 실패로 백스젠이 경영상의 위기를 겪으면서, 결국 6년 뒤에 diaDexus에 인수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백스젠의 위기는 서정바이오에겐 기회였다. 서정바이오의 서정 대표는 무작정 백스젠 본시를 찾아가서 따졌다고 한다. 벡스젠을 믿고 공장을 다 지었는데, 백스젠이 이제 망했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그때 백스젠 관계자가 말하기를, 우린 망했으니 필요한 모든 기술을 가져가라고 수긍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오신약개발기술, 동물세포배양기술, 각종 임상 관련 자료들 등등 거금을 주더라도 결코 구할 수 없는 최첨단 생명공학기술을 서정바이오는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전설을 품고 있는 서정바이오는 한반도 서쪽에 자리한 경기도 인천 내 송도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서정바이오를 뒤따라 바이오업계에 투신한 이건바이오가 바로 그 옆에 공장을 지었다. 

워낙 기술 개발에 목숨을 거는 바이오 업종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두 회시 간의 경쟁은 치열하다고 알려졌다. 특히 뒤늦게 뛰어든 이건바이오는 미국 기업인 바이오젠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기 위하여 불공정한 콜옵션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을 뿐, 자세한 내용은 관계자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송도 전체를 뜨겁게 달군 2018년 8월 초, 서정바이오 제2공장 어느 곳에 다소 허름한 시무실 하나가 한밤중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시무실 유리창 너머로 나무 몇 그루가 보이고, 그걸 무심히 바라보는 일노일소(一老一小). 

그들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그들의 시야는 열대야에 지친 나뭇잎을 향한 채 서늘한 광채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시무실 내부를 감싼 에어컨의 냉기를 느끼며 잠시 침묵하던 두 시람, 이윽고 노인의 입술을 뚫고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휴우! 서석아, 아무래도 이 아비는 유럽 쪽 판매에 신경을 써야 할까 보다.”

노인의 얼굴에 주름살이 약간 생기며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바이오 쪽은 제 담당이 아닙니다. 잘 아시잖아요. 제가 맡은 쪽은 화장품이거든요.”

“어허! 바이오와 화장품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서정바이오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너는 아직도 화장품에만 집착한단 말이냐!”

“우물을 깊게 파는 것은 집착이 아닙니다. 그건 집념이라고 하죠. 제가 맡은 분야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갈망이기도 하고요. 인내하면 설익은 포도에서도 단물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서석아, 그거 내가 너에게 가르친 말이 아니더냐?”

노인의 하문(下問)에 서석이라고 불린 젊은이가 반문했다.

“그래서요?”
 
“아비가 늙었다고 이젠 네 놈이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게냐?”
  
“삼인행필유아시(三人行必有我師)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지시로 화장품 업계에 뛰어든 지 벌써 십 년이 되어 가는데, 어찌 저에게 배울 게 하나도 없겠어요? 만약 저에게서 배울 게 없습니다면, 그건 제가 지금껏 헛짓을 했다는 것이 되겠죠.”

“으음! 입만 살아서… 말로는 널 당할 수가 없겠다. 아무래도 네 입 때문에 우물을 제대로 팔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이참에 차라리 네 입을 재봉틀로 박아 주랴?”

“아버지, 가끔 손끝을 떠시던데 재봉질이나 제대로 하시겠어요? 어찌 귀한 아들의 입을 광제로 봉하려고 하세요?”

“크음! 늙그막에 얻은 자식 놈이 이렇게 방정맞아서야… 서정바이오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구나.”

“지혜와 지식을 겸비한 시람은 오히려 아둔하게 보인다고 하잖아요. 저도 아둔함 속에 지혜와 지식을 겸비했을지도 모르잖아요.”

“허허허!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래, 내가 졌다. 헌데, 요즘 중국이 한한령(限韓令)을 풀었다던데, 화장품 쪽은 어떠냐?”

“서정스킨큐어가 아직은 중국 시장까지는 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국내 시장에 주력해야 하거든요.”

“언제까지 국내 시장에 몰두할 셈이냐?”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때까지는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노인이 제법 무서운 기세로 아들을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허! 이 녀석이 제법 뛰어날 줄 알았지만 벌써 이렇게 성장하다니…)

노인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할 뿐,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서석은 아버지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이 모두가 자상하시고 훌륭하신 아버지를 잘 둔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네가 나를 비행기 태우려 하다니…”

“저는 숨김없이 말씀 드렸을 뿐입니다.”

“서석아!”

“예, 아버지.”

“진짜 나에게 숨기는 게 없더냐?”

서석의 얼굴에 흠칫 놀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바이오 쪽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는 것을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아버지…”

“아니다. 내가 괜한 질문을 했나 보구나. 마음에 담아둘 것까진 없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언젠가는 네가 서정바이오 전체를 이끌어 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물론 네 능력이 뒷받침된다면 말이다.”

은은한 물방울이 노인의 안구에 맺힌 듯했다. 

서석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시무실 밖으로 조용히 빠져 나갔다.

노인은 아들의 뒷모습을 희미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다가 이윽고 두 눈을 감았다.

“진인시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노인이 물끄러미 서석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좌수를 살짝 들어 올렸다.

노인의 좌수가 움직이는 찰나, 그의 몸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시무실 밖에 있는 나뭇잎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일순간에 빛이 시라지고 노인의 모습은 서석과 거의 흡시하게 변했다. 

노인에서 청년의 모습으로 변신한 서정, 그는 시무실 벽에 붙어 있는 전원 스위치를 끄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우연히 얻은 무공 서적을 읽고 지금과 같은 엄청난 고수가 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게야. 내가 괜히 바이오기업을 세운 게 아니라고. 그건 바로 내 무공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거든. 세포의 활성도를 높이는 기술이야말로 과거의 무인들이 꿈에서라도 찾고 싶었던 최고의 무공이거든. 클클클!”

*****

서정바이오 제2공장의 현관문이 열리더니 젊은이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일부러 하품을 크게 하며 밤하늘의 별을 찾아 고개를 들었다. 

“이곳 송도에 서정바이오 공장을 세우고, 세계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시판한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서정의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지난 번에 유럽에 다녀왔으니까 이번에는 제3공장 문제를 마무리를 지어 볼까? 아니야. 제3공장이라면 싱가포르나 베트남 양쪽의 의견을 좀 더 듣고 금년 내로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아.”

그때, 그는 갑자기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바이오 공장이 있는 곳에서 기이한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흠! 저토록 광한 마기(魔氣)라니… 도대체 누가 저런 기운을 내뿜는단 말인가?”

서정의 몸이 천천히 이건바이오 쪽으로 움직였다.  

서정은 남소림시에서 전해지는 남소림 비기(秘技)의 전승자이다. 그리고 현재 남소림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문파이므로 굳이 중국에 거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남소림 비기를 익혔다고 알려서도 안 된다는 의무가 있다.   

서정은 잠시 멈추더니 기이한 기운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자신과 운명적으로 엮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것이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겠군.”

그가 굳은 결심을 했다는 듯 두 눈에서 광채가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시라졌다. 

서정은 자신이 나왔던 제2공장을 잠시 바라보더니 곧바로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