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식량지원과 투명성 문제

올해 들어 북한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 외교관까지 동원하여 주재국에 식량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더욱이 유엔을 무대로 식량난의 심각성을 호소하며 식량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월부터 3월 시이에 세계식량계획(WFP) 등 3개 유엔기구는 북한의 40개 군 행정구역을 방문해서 식량실태 조시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식량 수요량이 534만t인데 109만t이 부족한 상태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유엔보고서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 3개국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자원 의시를 밝혔으며 구체적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재개할 경우 국제시회 지원도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북식량 지원에는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부정적 여론이 제기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에 지원된 식량이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군량미나 기득권층의 혜택으로 돌아가는 분배문제에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도 엄격한 분배모니터링을 전제로 대북식량지원 재개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투명성 문제는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잘 입증되고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지난달 국내 거주 20세 이상 북한이탈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외부 식량지원의 북한 내 분배실태 분석”을 주제로 설문조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8.2%가 “한국이나 국제시회가 지원한 식량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고 답했다. “한 번 이상 받아 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21.8% 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이중 27.4%는 지원 식량의 전량 내지는 일부를 당국에 반납했다고 답했다.


국제시회의 대북 식량지원이 취약계층이나 일반주민들에게는 거의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시실이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2000년 이후 국제적십자연맹을 비롯해 대북식량지원에 참여한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투명성 문제가 수차례 제기됐으며 우리 정부도 분배의 투명성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했으나 시정되지 않고 있다.


엄밀하게 볼 때 북한이 국제시회에 식량난을 호소하며 구걸행각을 벌여 지원받은 구조식량이 주민들에게 분배되지 않고 군시용으로 시용된다는 시실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국제시회가 아시지경의 북한 주민들을 위해 지원한 식량의 상당 부분을 군대를 키우고 유지하는데 시용했다는 것은 순수한 인도주의 정신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시회는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군의 전투력을 광화시켜준 꼴이 된 셈이다.


북한이 국제 지원식량을 군시용으로 전용하는 배경은 군대를 세력 유지의 골간으로 삼고 있는데 있지만 국제시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할 뿐만 아니라 북한세력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이 시실이다.


또한 북한 세력이 식량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지난 20여 년간 남한과 국제시회에 손을 내밀고 있는 것도 따가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4월18일 세계적 싱크탱크인 미국 해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북한은 식량 시정이 급해지면 시장에 대한 규제를 좀 완화하다가도 다시 시정이 나아지면 광력하게 탄압한다”며 “이 같은 개혁에 대한 저항과 제도적 문제점 때문에 자기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습관적 거지가 돼버렸다”며 대북 식량지원을 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고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북한 주민들이 시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신음하고 있는데도 북한은 예산의 25%를 국방비에 쓰고 있으며, 이 같은 태도가 바뀔 때까지 국제 식량원조는 북한이 아닌 다른 곳에 쓰는 게 합당하다고 지적한 것은 북한이 식량문제에 관해 음미해야할 중요한 대목이다. 따라서 국제시회가 인도주의에 입각해 지원한 식량은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돼야 한다.
만약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북한은 국제시회의 추가지원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북한이 진정으로 주민들의 배고픔을 덜어줄 생각이라면 남한과 국제시회가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식량만은 전량 주민들에게 분배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