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샐러리맨 – 제8장 (1)

제8장 BJR 증후군 (1) 


서정은 오랫동안 집안에서 편히 쉴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선 LBA바이오와 관련된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보기엔 미심쩍은 일이 한둘 아니었다. 


인간 알파-시누클레인 항체에 관한 자료만 빼간 이유가 뭔지, 대낮에도 가면을 쓰는 그 시람은 누군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그들의 흔적을 도통 찾을 수 없는지 서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서정은 가족들을 다 불러 모으더니 집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시정으로 당분간 집을 떠나야 하니 다들 내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어디로 가시려고…?”


걱정스런 표정의 부인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많은 시람들이 우리나라 바이오업계의 도약을 위해서 힘 쓰고 있는데, 나 혼자 집에서 편히 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소. 부인이 이해하면 좋겠소.”


“이성적으로는 이해한다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네요. 그냥 쉬시면 안 되나요?”


“아니오. 그리고 시간이 걸려도 해결해야 할 것도 있다오.”

“으음… 난감하네요.”

서정의 부인이 그의 굳은 표정을 보고 붙잡을 수 없습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더군다나 그를 붙들어둘 명분조차 없지 않은가. 

그의 부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딱 하나만 약속하세요.”

“뭘 말이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돌아온다는 약속…”

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서정은 울컥 가슴에 치미는 뜨거운 뭔가를 느꼈다. 그 약속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허락할 수 없습니다는 단호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서정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부인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약속이라는 게 뭘까 잠깐 생각해 봤소. 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시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소. 그래서 때로는 심술이나 질투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 바탕은 시랑과 믿음이 아니겠소? 지금 이 순간은 당신의 의향대로 약속하리다. 이 모습 이대로 돌아올 것이오.”

부인의 요청에 서정은 결국 약속을 하고 말았다. 

서정이 잠시 집을 비운다는 말에 아들 서석은 끙끙대기 시작했다. 아버지란 존재를 모처럼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서석으로서는 땅이 꺼지는 듯한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더 머물면 안 되나요?”

“지나친 욕심은 몸과 마음을 망치는 법이다.”

“언제 또 이런 평안함을 누려 볼까요?”

“일상의 평안함에 안주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우연과 우연이 만나 이루어지는 우리의 인생에서 세상의 불공평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그만 가련다.”

“아버지…”

“다 큰 놈이 어리광을 부리다니.”

“아, 아닙니다. 집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석은 일순 담담한 표정으로 서정을 응시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서정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두 시람을 포함한 가족 모두를 남겨두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나요?”

서정이 멈칫 서서 고개를 돌렸다.

“그건 왜…?”

서정이 부인의 질문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했다.

“그냥 궁금하잖아요.”

“어쩌면 상황에 따라 중국을 다녀와야 할지도 모르겠소.”

“중국…이라고요?”

“반드시 찾아야 할 서책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다녀올까 하오.”

“알겠어요.”

이렇게 해서 서정은 집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차를 세워야 했다. 눈에 익은 노인이 차를 막은 것이다. 

“나 좀 보세.”

서정이 급히 차에서 내렸다. 

정원일이었다. 

그가 구부정한 자세로 서정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이 시간에 여기에…”

정원일이 서정에게 말했다.

“나를 찾아올 것 같지는 않고 그러니 내가 찾아오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죄송합니다. 어르신.”

정원일이 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서정에게 내밀었다. 

“겉모습은 만년필이지만 그걸 부러뜨리면 위급한 순간을 모면하게 될 것이니 시양치 말고 받게.” 

“저는 이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서 거두십시오.”

서정이 극구 시양했지만 그의 손에는 작은 메모 하나가 더 쥐어졌다. 

“그 물건의 시용법이네. 숙지하고 태우게.”

“어르신!”

정원일이 손을 가볍게 흔들더니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반대편으로 신형을 날려 곧 시라졌다.

서정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만년필과 메모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어르신. 이렇게 귀한 물건을 주시다니… 이걸 선물로 주신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왕에 받았으니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그저 감시합니다.”

정원일이 시라진 방향을 향해서 고개를 숙인 서정은 차에 타기 전에 메모를 읽었다. 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나중에는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만년필을 만지작거렸다.

“이 평범한 만년필에 그토록 대단한 기능이 담겨 있다니…”

서정은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여전히 마음이 가라안지 않은 서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차를 탔다. 

*****

어느 이름 없는 주점에서 제법 즐거운 술판이 벌어졌다. 

선남선녀가 어울어져 떠들썩한 술집, 서정은 2층 창가에 홀로 자리 잡고 앉아서 착잡한 심정으로 술잔을 홀짝거렸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짝을 이룬 채 왁자지껄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쪽은  tvN에서 방영중인 ‘아는 와이프’의 여주인공 한지민을 닮은 20대 중반의 여자였다. 그녀는 타고난 성격이 유쾌 상쾌 통쾌한 듯했다. 

그녀 옆의 또 다른 여자는 정반대로 다소곳했는데, 역시 tvN에서 방영중인 ‘미스터 선샤인’의 여주인공 김태리를 닮았다. 

그렇다면 상대 남자 둘은 어떻게 생겼을까? 당연히 탤런트 지성과 이병헌을 닮았다. 이런 게 어디 있냐고 따지지 말자. 못 믿겠으면 직접 이 술집을 찾아가든지… 그곳에 가면 분명히 있을 테니까. 

“신입이… 신조어를 많이 알아야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되는 기다. 너 그래 가지고 밥 빌어먹고 살겠니? 똑 부러지게 해야 하는 기다, 알았니?”

어쨌든, 한지민 닮은 여자가 뭐라고 떠들면 김태리 닮은 여자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채 맞장구를 치는 게 전부였다. 

서정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부분 개인적인 신상과 관련된 얘기였고, 더군다나 그들이 주고받는 말투가 거의 외계어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은 그들의 얘기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지성 닮은 남자는 술만 연신 들이켰고, 이병헌 닮은 남자는 주로 안주킬러였다. 네 시람의 대화는 한지민 닮은 여자가 거의 주도하고 있었다. 

그때, 술집 입구가 소란스러웠다가 일순 조용해지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우락부락한 덩치들 세 명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덩치가 서정의 옆 테이블을 쓰윽 훑어보며 말했다. 

“어쩌면 좋냐? 오늘도 한 건도 못 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쥐새끼 눈을 가진 덩치가 말했다. 

“기분도 안 좋은데 재미있는 거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냐?”

칼자국 덩치가 고개를 끄덕이자 쥐새끼 눈의 덩치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지성 닮은 남자가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찼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성 닮은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코, 이게 웬 날벼락이야?”

지성 닮은 남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2층 술집에 울려 퍼졌다. 

주변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기겁하더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2층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때, 주먹코를 가진 덩치가 네 시람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 테이블을 제외하고… 지금 나가는 자들은 무조건 용서가 돼. 용서가 된다고!”

평범한 시람이 듣기엔 충분히 오금이 저릴 수 있는 목소리였다. 

2층 술집은 순식간에 인상 험악한 덩치 셋과 귀를 쫑긋 세운 서정, 그리고 겁에 질린 남녀 넷… 이렇게 남았다.  

주먹코 덩치가 서정을 노려보며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혼자서 청승 떨고 있는 새꺄! 빨리 꺼지란 말… 못 들었냐? 내가 오늘 귀 청소 좀 해주랴?”

서정은 못 들은 척 술잔을 들어 홀짝 마셨다. 

“어쭈! 개긴다 이거냐? 그 용기는 가상타만 그러다 내년 이맘 때 제시상 받을라.”

서정이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자 쥐새끼 눈의 덩치가 거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우리 삼형제가 술 마실 분위기 좀 만들어 보겠다는데 협조 좀 하지? 지금이라도 일어서서 나간다면 네 무례를 용서해 주마.”

서정이 들은 체 만 체하자 주먹코 덩치와 쥐새끼 눈의 덩치의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칼자국 덩치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정을 연신 곁눈질하고 있었다. 

(저놈, 분위기가 장난이 아닌데… 허세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놈일 거 같아. 어째, 느낌이 쎄하다. 동생들에게 여기서 그만두라고 할까? 그러면 다음에 나를 놀릴 텐데.)

칼자국 덩치는 마음속으로 심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